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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노씨(安東盧氏) ㅣ 성씨본관별 유래와 기타 정보

포인트아이콘 유래
시조 : 노만(盧滿)
도시조 노수(盧穗)의 다섯째 아들 노만(盧滿)이 신라때 사람으로 나라에 공을 세워 안동백(安東伯)에 봉해졌고, 후손 노우(盧祐)가 고려 때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거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한 후 안동에 정착하여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노우(盧祐)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안동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계승하여 왔다.
 
포인트아이콘 인물
노우(盧祐)의 손자 노영길(盧永吉)이 고려에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안동부원군(安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그의 아들 노숭(盧崇)은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고 슬하에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맏아들 노원성(盧元成)은 도원수(都元帥)를, 셋째 노원신(盧元信)은 감무(監務)를, 막내 노원명(盧原明)은 사재감정(司宰監正)과 전서(典書)를 역임하여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 한편 노원명(盧元明)의 맏아들 노담(盧淡)이 조선에서 으뜸벼슬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역임했고 그이 아들 노윤적(盧允迪)은 판서(判書)를, 손자 노경과 노수(盧秀)는 참판(參判)을 역임하여 가문을 일으켰으며, 노원명의 둘째 아들 노징(盧澄)은 판사평부사(判司 平府事)를, 셋째 아들 노결(盧潔)은 도사(都事), 막내 노담(盧湛)은 대언(代言)을 각각 지냈다. 그외 노담(盧湛)의 아들 노윤정(盧允正)이 형조 참의(刑曹參議)를 역임하고 손자 노인석(盧仁錫)은 현감(縣監)을 지냈으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노윤필(盧允弼)의 아들 노우현(盧祐賢)은 현감(縣監)을 역임하여 이조 참판(吏曹參判) 노몽재(盧夢宰), 목사(牧師) 노세영(盧世英), 한림학사(翰林學士) 노덕린(盧德麟),부호군(副護軍) 노승주(盧承柱)와 함께 안동노씨의 가통(家統)을 지켰다.
 
포인트아이콘 과거급제자(조선시대)
노후익(盧後益, 1631 辛未生) : 사마시(司馬試) 현종1년(1660) 증광시 삼등(三等)
 노두망(盧斗望, 1655 乙未生) : 사마시(司馬試) 숙종25년(1699) 식년시 삼등(三等)
 노두망(盧斗望, 1655 乙未生) : 사마시(司馬試) 숙종25년(1699)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3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사마시 3명)

포인트아이콘 본관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
안동(安東)은 경상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대에는 창녕국(昌寧國)인 소국이었다. 신라가 이곳에 진출하여 고타야국(古陀倻國)으로 불렀고, 757년(경덕왕 16)에 고창군으로 개칭하고, 직령현·일계현·고구현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안동부로 승격되었다가 후에 영가군으로 강등되었고, 995년(성종 14) 행정구역 개편 때 길주로 승격되었다. 그 뒤 몇 차례의 변화를 거쳐 1030년(현종 21)에 안동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1197년(명종 27)에 도호부로 개칭되었고, 1204년(신종 7)에 대도호부로, 1308년(충선왕 즉위)에 복주목(福州牧)으로 계속 승격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에 복주로 강등되었다.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승격되었으며, 1361년에 다시 안동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383년(우왕 9)에는 안동도로 개편하였다가 1388년에 부사로 환원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안동대도호부로서 경주와 함께 경상좌도(慶尙左道)의 대읍으로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석릉(石陵)·고령(古寧)·화산(花山)·능라(綾羅)·지평(地平)·일계(一界)·고장(古藏) 등의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안동부 안동군, 1896년에 경상북도 안동군이 되었다. 1931년 읍면제를 실시함에 따라 안동군 부내면이 안동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63년에 안동읍이 신안동시로 승격되었다가 곧 안동시로 개칭하였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에 통합되었다.
 
포인트아이콘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안동노씨는
1985년에는 총 1,020가구 4,531명,
2000년에는 총 983가구 3,14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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